어른들의 장난감

3,000원짜리 말랑이부터 ASMR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디지털 오버로드'와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저렴한 탈출구로 성인용 장난감을 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 관리의 허점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수입품들이 소비자 손에 들어가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적 스트레스 해소 용품들이 과연 무해한 정신적 안식처로 남을 수 있을까요?

2026-09-08     Kim Hee-nu(PR Editor)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시장. 신학기를 앞둔 진열대에는 필기구나 실내화 대신 왁뿌볼과 말랑이, 키캡 키링이 성인 키 높이만큼 쌓여 있다. 주말이면 좁은 통로가 인파로 가득 차 지나가기조차 힘들 정도다. 매대 앞에 줄을 선 이들 중 상당수는 10대가 아니라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이다. 한때 초등학생 완구로 여겨졌던 이 장난감들이 이제는 "어른이(어른+어린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5월 말랑이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35% 늘었고, 구글 트렌드에서 "슬랑이" 검색 관심도는 최고치인 100을 기록했다. 다 큰 성인들은 왜 손바닥만 한 장난감 하나에 지갑을 여는 걸까.

 

       1. 디지털 과부하를 끄는 손끝의 휴식

       말랑이, 왁뿌볼, 키캡은 모두 "피젯 토이(Fidget Toy)"로 분류된다. 볼펜을 딸깍거리거나 다리를 떠는 등 불안할 때 나오는 무의식적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장난감이다.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이들에게 손끝의 촉감과 반복되는 소리는 뇌를 잠시 꺼두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트레스 인지율은 40대가 35.1%로 가장 높았고, 원인 1위는 직장생활(25.7%)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런 장난감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트레스 완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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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3천 원으로 사는 가성비 도파민

       왁뿌볼은 개당 2000~5000원, 말랑이와 슬랑이는 3000원부터 시작한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책상 위에 즉각적인 만족감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물가 부담이 커진 불황기에 큰 지출 없이 작은 보상을 얻으려는 "소확행" 소비 심리와 맞아떨어진다. 저출산으로 어린이 완구 시장이 줄어드는 동안, 그 빈자리를 성인 소비자가 채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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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숏폼 ASMR이 키운 소유욕

       이 유행의 진짜 연료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다. 왁스가 바삭하게 부서지는 소리, 말랑이가 서서히 복원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중독성 있는 콘텐츠가 된다. 많은 셀럽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이를 가지고 노는 장면은 팬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말랑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1만 개에 달한다. 화면 속에서 소비되던 감각이 실물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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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 물질 사각지대, 안전은 뒷전

       문제는 안전성이다. 어린이 제품은 KC인증이 의무이지만, 최근 일부 수입 스퀴시 제품은 "14세 이상 사용" 표기를 붙여 인증 절차를 피해 가고 있다. 실제로는 14세 미만 어린이에게도 판매되는데도, 제조·수입사가 사용 연령 표시만으로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받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앞서 2019년 한국소비자원이 슬라임 제품을 조사했을 때 일부에서 안전 기준을 초과한 유해 물질이 검출돼 무더기 판매 중지 조치가 내려진 전례가 있다. 관계 당국은 뒤늦게 안전 실태 조사에 착수했지만, 유행이 소비를 앞지르는 사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먼저 손에 쥐어지고 있다.

 

       말랑이를 주무르고, 왁뿌볼을 깨뜨리고, 키캡을 두드리는 행위는 유치한 퇴행이 아니다. 불확실한 경기와 쉴 틈 없는 디지털 자극 속에서, 이 작은 장난감들은 값싸고 즉각적인 스트레스 분출구이자 심리적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어른들이 다시 장난감을 집어 든 것은 유치해서가 아니라, 치열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영리하고 현실적인 위로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Kim Hee-nu(PR Editor)

heennx@soongs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