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리고, 리듬에 맞춰 몸을 조금씩 흔들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움직이는 대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단순한 행동조차 쉽게 하지 못한다. 흥얼거림은 입 안으로 삼켜지고, 몸의 리듬은 발걸음 속에 묻힌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점점 사라진다.
‘운동’만 남은 움직임
오늘날 우리의 움직임은 점점 ‘운동’이라는 틀 안으로 제한되고 있다. 헬스장, 필라테스, 러닝처럼 시간과 장소가 정해진 활동만이 ‘움직임’으로 인정받는다. 최근 건강과 자기관리 트렌드의 확산으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로 참여하는 체육활동 중 ‘달리기’를 선택한 비율이 2024년 4.8%에서 2025년 7.7%로 2.9%p 상승했다. 헬스장 이용률과 운동 관련 콘텐츠 소비 역시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등산, 수영 등 다양한 생활체육 참여도 전반적으로 증가하며, 자신을 위해 운동을 즐기는 사회로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상 속 신체 활동량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이동마저 최소화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운동은 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왜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까?
우선 공부, 과제, 아르바이트 등 대부분의 활동이 ‘앉아서 수행하는 일’로 구성되어 있다. 움직임은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여겨지며 점점 배제된다. 엘리베이터, 배달 서비스 등 편의 중심 환경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한다. 수면 부족과 피로 또한 신체 활동을 더욱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줄어든 움직임은 심리적 메커니즘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동을 조절하는 경향을 ‘자기검열(self-monitoring)’로 설명한다. 공공장소일수록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기준을 내면화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스스로 억제한다. 즉 우리가 거리에서 몸을 흔들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검열하는 심리적 습관이 몸에 밴 결과에 가깝다.
인간의 몸과 움직임이 갖는 원초적 의미
하지만 인간의 몸은 본래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버드대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은 저서 『Exercised』에서, 인간은 걷고 뛰고 파고 나르는 등 생존에 꼭 필요한 움직임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도록 진화했을 뿐,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우리 몸은 필요할 때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에너지를 아끼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이 ‘필요에 의한 움직임’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데 있다. 걷고, 나르고, 오르내리던 자연스러운 활동이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배달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몸은 움직일 이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한편 작은 리듬, 몸의 흔들림, 무의식적인 제스처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의 표현 방식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거나 반복적인 신체 활동을 할 때 뇌에서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옥시토신과 같은 긍정적 정서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는 기분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음악과 리듬, 신체 움직임이 결합될 때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
앉아 있는 삶의 한계
장시간 앉아 있는 자세는 특히 골반 주변 근육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엉덩이에는 몸 전체 근육의 상당 부분이 몰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둔근은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고 척추와 골반을 지지하는 핵심 근육이다. 오래 앉아 등받이에 기대는 자세가 반복되면 대둔근의 활성도가 떨어지고, 걷거나 다리를 들어 올릴 때도 엉덩이 대신 허벅지 뒤쪽이나 허리 근육이 대신 힘을 쓰게 된다. 이는 ‘엉덩이 기억상실증’이라고 불리며, 방치하면 골반과 척추를 지지하는 힘이 약해져 허리디스크, 고관절 충돌증후군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신체 균형이 무너지면서 낙상 위험도 커진다. 여기에 골반과 허리를 직접 이어주는 장요근까지 짧아지고 굳으면 골반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전방경사’가 나타나 허리 통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에 더해 ‘의자병(sitting disease)’이라 불리는 현상은 장시간 좌식 생활이 심혈관 질환, 대사 기능 저하, 수명 감소와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개념을 대중화시킨 메이요 클리닉의 제임스 러바인(James Levine) 박사는 “앉아 있는 것이 새로운 흡연이다(Sitting is the new smoking)”라는 표현으로 이를 경고한 바 있다. 그는 하루 중 격렬한 운동 시간이 아니라, 서 있거나 걷거나 몸을 움직이며 소모하는 ‘비운동성 활동 열생성(NEAT)’이야말로 체중과 대사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점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더라도 이러한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한 시간의 운동이 나머지 열 시간 이상의 ‘정지 상태’를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문제는 ‘운동의 부족’이 아니라 ‘일상적 움직임의 결핍’이다.
움직임을 지키는 사람들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문화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거리에서는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춤은 감정과 분위기에 반응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삼바는 아프리카계 문화에서 기원해 19세기 기록에 등장한 춤으로, 오늘날에는 리우 카니발을 상징하는 요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리의 바나 가족 보임처럼 비교적 열린 공간에서는 음악과 함께 즉흥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함께 커플 댄스인 포호와 세르타네주는 지역과 모임의 성격에 따라 사교적인 방식으로 이어지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펑크 카리오카와 같은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브라질에서는 « 모든 것은 결국 삼바로 끝난다 (Tudo acaba em samba) » (따옴표 맞는데 모양이 이상…) 라는 노래가 있다. 그만큼 춤이 일상적인 사교와 감정 해소의 중심에 있다. 나이와 성별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리듬을 공유하는 경험이 강조된다.
한편 하와이의 훌라 역시 춤을 삶과 분리되지 않은 표현 방식으로 보여준다. 훌라는 노래의 내용을 손짓과 몸짓으로 풀어내는 춤으로, 손의 곡선은 파도를, 발의 리듬은 대지의 흐름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는 의식과 이야기 전달, 공동체 행사 속에서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에도 공연을 넘어 문화적 기억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에게 움직임은 자연과 삶을 연결하는 하나의 언어에 가깝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움직임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통 방식’으로 인식한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통제적으로 시간을 맞추고 루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몸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태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 움직이고,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다. 일상 속에서의 작은 움직임을 회복하는 일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각을 되찾고, 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운동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Park Seo-won (Planning and Operations Editor)
sparkttha1@soongsil.ac.kr

